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경계 판정을 받은 아들을 키우면서 막막함과 괴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저는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천일결사기도를 한 지 만 3년이 됩니다. 스님의 가르침과 정진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고, 제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고 괴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철없이 행동하고 공부도 안 하며 무기력해 보이는 고등학생 아들을 보면 요즘도 가끔 잔소리를 하게 되고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힘들고 지칩니다. 나중에 아이가 잘 커서 독립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들을 키우고 수행을 해나가야 할까요?
질문자는 수행해서 자신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이가 환자라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아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도 그 아이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내심 아이가 다른 아이처럼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의 모습이 불만스럽기 때문에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가도 어느 순간 아이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먼저 아이가 환자라는 것을 질문자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식을 환자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면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환자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는 은연중에 ‘우리 아이가 조금만 정신을 차려서 열심히 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을 끝없이 기대하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을 자꾸 요구하게 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나중에는 부모에 대해 저항감이 생기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정신 질환이 없는 사람을 100퍼센트라고 가정할 때, 우리 아이는 한 80퍼센트 정도 사회적 활동이 가능한 상태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아이를 보는 기준을 100퍼센트가 아닌 80퍼센트 정도로 가져야 합니다. ‘그래도 제때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에도 간다’ 이렇게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 중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학교를 가지 않거나 인터넷 세상에만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증상이 더 심해지면 주변인들에게 폭력성까지 드러내기도 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아이의 증상이 크게 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자가 희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볼 때는 아이가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질문자가 바라는 대로 될 것 같지만 아이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벌떡 일어서서 걷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병원에서 ADHD 경계 판정을 받았다고 하니 그것을 감안하고 아이를 봐야 합니다.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격려와 지지를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밖으로 쏘다니면서 사고를 안 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학교를 잘 다닌다면 ‘학교만 가줘도 다행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교과 성적이 낮아서 위축감을 느낀다면 부모는 ‘괜찮아,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넌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해줘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게 되어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속상해서 의기소침해질 때 질문자는 ‘그 정도만 해도 괜찮아. 어떤 상황이든 엄마는 너를 아끼고 사랑할 거야’라고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무조건 잘한다고 치켜세워서는 안 됩니다. 너무 과하게 칭찬하면 아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모습과 비교하면서 오히려 위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아이에게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해준다면 현재보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질 수 있고, 질문자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많은 격려와 지지를 해주며 양육해도 사회에서 적응을 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직접 낳아서 키운 엄마부터 아이를 문제시한다면 그 아이가 사회에서 잘 적응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에 대해 ‘항상 나를 사랑하고 격려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인생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힘든 일을 겪어도 언제든지 따뜻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자꾸 문제시하거나 내친다면 아이는 밖으로만 돌게 되어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과잉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밥을 안 먹는다고 해서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밥을 떠먹이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밥을 안 먹는다고 아이에게 짜증을 내서도 안 됩니다. 식사 때가 되었음을 알려서 아이가 밥을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먹지 않으면 그냥 치우면 됩니다. 이렇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해서 양육하되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는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잘 살겠다는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는 문제가 없다,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의 생각에는 기도문이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자의 기대에 못 미쳐서 일어나는 생각일 뿐입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면 아이를 문제시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를 낮추면 아이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자신의 기대보다 못한 것일 뿐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도 평범하게 잘 사는 사람인데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기대에는 못 미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기대를 낮추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가 크면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고, 부부가 서로에게 기대가 크면 갈등을 하게 됩니다.
< 2024.03.10. 법륜스님의 '하루'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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