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한 지 22년이 된 주부입니다. 저희 부부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둘 다 워낙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사회에서 일찍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장성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어요. 저희 남편은 원래 성격이 급하고 막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20대 때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30대 때는 남편을 이해도 해보고 속으로 욕도 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40대 중반이 되니까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졌어요. 그래서 저도 같이 막말을 했더니 제 속은 편해졌는데 남편이 이혼하자고 해요. 남편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제가 남편의 막말을 참고 이해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저도 곧 며느리를 봐야 하는데 그냥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이혼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화를 내면서 말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손해가 더 큽니다. 할 말은 하되, 화내지 않으면서 말하는 게 좋습니다. 욕하거나 막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건 내 인격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 돌아오는 손해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화도 좀 내고 욕을 해서 속을 풀고 싶다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가생활을 할 때도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잖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음식값을 내야 하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싶으면 그 비용을 내야 합니다. 이처럼 내 속을 풀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욕하고 뺨을 한 대 얻어맞는 것도 방법입니다. 욕을 해야 속이 풀린다면, 뺨을 맞으면서도 '아, 속 시원하다!' 하고 빙긋이 웃어야 해요. 이런 건 괜찮습니다.
지금 질문자의 사례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항상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내게 뭔가 기쁨을 주거나 이익이 되는 것에도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질문자가 욕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상대가 어떻게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내가 괴롭지 않습니다.
신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하고 비는 사람은 주인이 누구일까요? 신이 주인입니다. 부처님께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는 사람은 인생의 주인이 부처님입니다. 남편의 말과 행동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사람은 인생의 주인이 남편인 거예요. 인생의 주인이 남편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고, 임금도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면 어떤 세상에도 맞추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술을 안 마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남편이 인생의 주인인 거예요. 남편이 술을 안 마시면 기분이 좋고, 남편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나쁘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술은 좀 마시지만 돈을 잘 번다.' 또는 '그 사람 성격은 좋다.' 하고 남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같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잘 벌고, 평소에 잘해줘도 술만 먹으면 행패를 피워서 이 사람과 못살겠다면 헤어지는 길도 있습니다. 결정은 누가 할까요? 내가 합니다. 이게 바로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을 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질문자처럼 늘 남편의 말과 행동에 따라 기분이 좋거나 나쁘다면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닌 거예요.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좋고 늦게 들어오면 싫고, 나만 보면 좋고 딴 여자를 보면 싫고, 술을 안 마시면 좋고, 술을 마시면 싫고 이렇게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면 남편의 노예입니다. 개가 산책을 할 때 자기 마음대로 걷는 것 같지만 결국은 개목걸이를 쥐고 있는 주인을 따라다녀야 합니다. 주인 앞으로 갔다가 주인 뒤로도 갔다가 하지만 결국 주인이 가는 대로 따라다녀야 하잖아요. 사람도 순간순간은 자기가 주인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으로 살려면 그 목걸이를 잘라야 해요. 여러분은 그 목걸이를 스스로 자기 목에 걸고 '나를 끌고 다니십시오.' 하고 그 끈을 남편한테, 아내한테, 자식한테 줍니다. 심지어는 하느님한테, 부처님한테 주고 '나의 주인이 되십시오.'라고 해요. 이게 바로 종의 처지가 되는 거예요.
부처님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수행은 모든 일을 ‘어떻게 내가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불교 용어로 ‘중생’이라고 해요.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붓다, 또는 부처’라고 합니다. 부처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에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2024.03.11. 법륜스님의 '하루'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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