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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하루

투표할 때마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서 고민입니다.

by 명랑bb 2024. 3. 21.

 

다가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까 고민이 됩니다. 여야 정책이 비슷해서 차별성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지역 특성상 특정 정당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매우 높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제3지대에 대해 기대를 했지만, 비례대표 정당 또는 위성정당이 판을 치고 있어서, 제가 주는 표가 사표가 되어버릴 것 같기도 합니다. 투표는 해야겠는데, 투표할 때마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서 고민됩니다. 선거 때마다 드리는 질문이지만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 부탁드립니다.

 

만약 지지하는 사람이 있거나, 지지하는 정당이 있으면 여러분 뜻대로 투표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은데 투표를 해야 할 때는, 현재 선거 제도상 기권을 하는 경우에 내 의사가 반영되지 않습니다. 기권하는 것도 주권자로서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경고 메시지인데, 현 선거제도에서는 기권표가 당선자 결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만약 투표용지에 ‘나는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 기권한다.’ 하는 선택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걸 선택할 수 있고, 또 그 비율이 일정 정도를 넘어설 때 그 의사가 반영되는 제도가 있다면 정치권에서도 ‘국민이 두 당을 모두 싫어하는구나!’ 하고 반성해서 개선될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존의 정치가 싫어서 경고의 메시지로 기권하는 표와 국민의 권리를 포기해서 기권하는 표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투표를 해야만 내 의사가 반영될 수 있습니다. 이런 선거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기권을 나타낼 수 있는 선택지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고치도록 요구를 해야겠죠.

 

누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거나, 최선은 아니지만 적어도 차선이라고 생각하는 후보가 있다면 자기 뜻대로 투표하시면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후보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라도 최악을 피하는 쪽으로 내 표를 행사하는 게 좋습니다. 현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아서 전체 주민의 20%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후보들보다 많이 득표하는 경우 그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선출됩니다. 선출된 사람은 다수의 주민이 자신을 지지했다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누가 더 해악이 클지 살펴보고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 다 정쟁을 일삼고 해악을 끼칠 것 같지만 둘 중 누가 더 많은 해악을 끼칠지를 보고 해악이 적은 쪽으로 선택하는 거죠. 이렇게 후보가 두 명일 때는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한다는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 당 모두 싫고 제3의 정당을 원한다면, 비록 내 표가 이번 선거에서는 사표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정당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길이 있습니다. 거대 양당을 떠나서 새로운 정당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주고 싶다면, 사표가 되는 걸 감수하고 내 의사를 표현하는 겁니다.

 

우선 분명한 선호가 있으면 여러분의 선호대로 투표하면 됩니다. 양쪽 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차악을 선택하면 됩니다. 개인보다는 정당에 대해 심판을 하고 싶다면, 현재 국정 혼란의 원인이 여당에 있다고 생각하면 야당에 표를 주면 되고, 원인이 야당에 있다고 생각하면 여당에 표를 주면 됩니다. 어차피 최악과 차악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제3의 길을 원하는 사람은 사표가 되더라도 제3의 정당 후보를 선택하면 됩니다.

 

비례대표를 뽑기 위해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우선 현재 위성정당 제도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건 선거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해야 하는데, 현재는 합법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위성정당 선택지가 주어지게 됩니다. 만약 양당 중 지지하는 쪽이 분명하면 그 당이 만든 위성정당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니 선호도가 분명한 사람은 제가 하는 말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양당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고, 그 외에도 뚜렷한 선호도가 없는 경우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정당을 찍는 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에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의 정치를 비판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선거 결과를 보니 국민은 여전히 양당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으로 자꾸 결론이 나버리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어집니다. 비록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표가 어느 정도 나오면 다음에 한 번 더 해보자는 희망이 생깁니다. 그러니 특별히 선호하는 곳이 없다면 기권을 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쪽을 지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후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경우에는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후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면 남성 후보보다는 여성 후보를 선택하거나, 우리 지역에 깃발만 꽂으면 되는 정당이 아닌 다른 당 후보를 선택하는 거죠. 특히 경상도나 전라도는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때도 지역에서 지지세가 강하지 않은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데 더 유리합니다. 그렇지 않고 지역 몰표가 나오면 결국 후보들이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당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당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시되니까 국민에게 선택권이 있는 게 아니라 당이 선택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후보들도 자연스레 국민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라 당에게 충성하게 되죠. 그래서 지금처럼 지역주의적으로 투표를 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선택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역주의를 넘어서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있는 경우라면 그렇게 선택하면 됩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있는데 그 사람이 몰표로 당선되는 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지지하는 쪽이 없을 때는 이런 부분을 경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지하는 쪽이 없는데도 그냥 경상도니까 이쪽을 찍고, 전라도니까 저쪽을 찍고, 기독교니까 이쪽을 찍고, 불교니까 저쪽을 찍고, 이런 식으로 눈 감고 투표하는 행태는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됩니다. 만약 정보가 없어서 눈 감고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가능하면 소수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쪽으로 표를 행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2024.03.19 법륜스님의 '하루'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