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년에 모든 일을 그만두고 은퇴했습니다. 시간이 남다 보니 제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를 좀 하고 싶었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정리하는 가운데, 몇 명 되지 않는 제 주변 사람들이 저와 너무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연락처도 차단하면서 한 명씩 정리하다 보니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새로운 사람을 좀 만나야겠다’ 하는 생각에 아는 분의 소개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보기에 굉장히 신앙심도 깊고, 점잖으며, 믿음이 가는, 진짜 괜찮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존의 집을 팔고 다시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분이 제게 목돈이 있는 걸 알았으며, 그걸 가로채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당할 사람은 아니지만, 너무 놀라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교회 사람들의 연락처를 모두 차단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직 사기를 당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런 소문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그랬습니다. 저는 이제 나이가 있어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의 규모로 망자의 인생을 평가합니다. 제가 죽었을 때, 제 딸은 괜찮지만, 사위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됩니다. 저는 스스로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아니면 그때를 생각해서 저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만나며 살아야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며 사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사는 것 중 무엇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좋은 사람만 만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고, 싫은 사람도 만나겠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어떤 선택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기 계신 여덟 분과 만난다고 해봅시다. 제가 며칠 지내보니 마음에 드는 분은 그중에 두 분밖에 없습니다. 제 마음에 드는 분만 만난다면 이 두 분만 만나야 합니다. 제가 좋더라도 그중 한 분은 제가 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왜 사람을 한 명밖에 사귀지 못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겠다면 소수밖에 만날 수 없습니다.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겠죠. 반면 여러 사람을 만나려면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싫은 사람을 어떻게 만납니까?’ 이렇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장사를 해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야 합니까? 아니면 좋고 싫은 걸 좀 뛰어넘어야 합니까? 좋고 싫은 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장사를 오래 하려면 속마음에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장사가 잘됩니다. 좋고 싫은 걸 너무 따지면 손님이 다 떠납니다. 그러니 내가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면 싫은 사람도 수용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결과를 원하면 내가 좋고 싫어하는 걸 좀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질문자 :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소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는 전부 얌체 같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갔는데, 은퇴해서 돌아보니까 내가 왜 그런 사람들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는지 후회스럽습니다.
네, 그러시면 관계를 다 끊고 혼자 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떤 물건을 사러 갔는데 너무 비싸면 사지 않고 그냥 돌아오는 방법이 있겠죠. 아니면, 흥정해서 좀 더 싸게 사 올 수도 있고, 꼭 필요하면 제 가격에 사 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이 물건을 꼭 사고 싶은데 가격을 깎아주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하고 묻는 것과 같아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씀드릴까요? ‘내 주변에 얌체 같은 사람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질문자가 얌체라서 그런 겁니다.
제가 만약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가 계속 자기 의견을 고집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사람은 고집이 참 세다’라고 말하면 저도 고집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나에게 고집이 없는데, 어떻게 상대를 향해 고집이 세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상대보다 내가 가진 고집이 더 세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상대에게 ‘그래, 당신 말이 맞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고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질문자가 주변 사람들을 얌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질문자에게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면 질문자는 약간 불안증이나 의심증이 있는 겁니다. 우선 병원 진료를 받아 보는 게 필요합니다.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처를 받아서 생겼는지 모르지만 의심병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불안증과 의심증 두 가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질문자는 지금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까 의사가 ‘그 정도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하면 괜찮은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경안정제를 조금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의사가 권장하는 대로 약을 좀 복용하면 심리가 훨씬 안정이 돼요. 일반적으로 어떤 증상이 병인지 구분하는 경계를 95퍼센트 정도로 잡습니다. 95퍼센트 안에 들어가면 괜찮다고 하고, 그 경계를 넘어가면 병으로 분류하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OECD 회원국의 평균보다 많이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비율은 OECD 회원국 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런 증상을 정신질환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진단을 받아도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으면 미래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거나 우울증 환자가 많은 이유는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데 방치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외국에 이민을 가서 생활하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이런 불안증이나 의심증이 더 많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시죠? 저는 여러분 중에 거의 절반은 불안증이나 의심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있으니 잘 모를 뿐입니다. 사람들은 낯선 곳을 가거나 잘 모르는 곳에 가면 대부분이 긴장하거나 불안해합니다. 또, 어떤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계속 의심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해서 오래 쌓이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이민을 온 사람도 늘 긴장하고 의심하며 사는 습관을 그때그때 해소하지 않으면 그게 쌓여서 습관이 됩니다.
많은 사람과 사귀고 싶다면 좀 베풀어야 합니다. 내 감정을 움켜쥐고 있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성질이 좀 더럽다면, 그와 만나는 것이 좀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사기꾼일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굉장히 친절하고, 말도 잘하고, 인물도 잘나고, 옷도 잘 입고, 씀씀이도 좋고, 뭐든지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은 사기꾼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낚시할 때 내가 잡으려는 물고기에 따라 미끼를 다르게 쓰는 것과 같습니다.
질문자가 같이 일한 동료나 지인들이 성격이 별로라서 불편했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질문자에게 손해 끼칠 확률이 낮은 사람입니다. 질문자에게 괜찮게 보인 사람들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너무 친절히 다가온다면 약간 주의하셔야 합니다. 세상에는 절대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건 없습니다. 무조건 좋은 사람도 없고, 무조건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특별히 나쁘다고 할 만한 일은 없습니다. 모두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만 ‘그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내 선택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법륜스님의 하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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