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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하루

물건을 훔쳐간 아이들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by 명랑bb 2024. 3. 7.

 

저는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느낀 점이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그리고 창고에 적재되어 있는 물건들이 좀 과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창고 물품 정리도 아이들이 못 보게 저 혼자 합니다. 아이들이 물품을 보게 되면 당연히 탐하게 되니까요.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7학년인데, 수업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지순례 기념 물품으로 단주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함께 만든 단주를 JTS 홍보관 옆 작은 스토어에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7학년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걸 훔쳐간 거예요. 제가 속상한 점은 자기네들이 손수 만들어서 자랑스럽게 진열해 놓은 건데, 이 아이들한테 스토어를 구경시켜 줄 때에는 그걸 감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들 중에 이 아이들이 탐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속상했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아이들을 대해야 할까요?

 

옛날부터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해서 ‘견물생심’이라는 고사성어도 있잖습니까. 인간의 기본 심리가 그런 데다가 특히 인도 아이들은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학교에 별로 탐낼만한 물건이 없는데, 인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학교에 있는 물건들 중에 그들이 갖고 싶은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적인 인간의 심리가 아니겠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 사람들이 사는 실내 공간에는 인도 아이들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차별을 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첫째, 우리는 고생하지만 그 아이들이 볼 때는 호화판으로 산다고 잘못 이해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들이 물건을 자주 보게 되면 물건을 가져갈 궁리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실은 다 열어놓고 살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생활공간만큼은 활동가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아야 되니까 인도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도록 결정한 것이에요.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이 인도에 파견을 가면 생활이 불편하니까 개선 요청을 많이 합니다. 이 부분이 한국 사람들과 현지인 사이에 생활의 격차를 만들어 갈등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건강을 위해 생수를 먹거나 정수기를 사거나 세탁기를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인도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받는 사람 사이에 마치 양반과 상놈처럼 어떤 차이를 두고 교육을 하기 때문에 교육의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듣는 척은 하지만 틈만 나면 훔치려고 하거나, 안 그러면 자기도 나중에 돈을 벌면 그걸 사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본 게 있으니까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활동가들이 그들처럼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볼 때는 지금도 한국 활동가들이 오지에 와서 매우 열악하게 산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도 인도 사람의 집에 가서 살아보시면 학교 건물 복도에서 자더라도 그들의 집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의 잠자리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현지인들과 분리된 공간에서 한국 활동가들이 생활하는 이중구조가 아이들을 충분히 교육하는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순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난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을 너무 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치 옛날에 하인이 물건 하나 훔쳤다고 양반이 하인을 엄청나게 야단치는 것과 같아요. 이런 모순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화내지 않고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교육상 아이들의 행동을 방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물건을 가져갈 때 개가 뼈다귀를 물고 가는 것처럼 아무런 죄의식이 없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물건이 있으면 그냥 가져가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예요. 그런데 이 아이들도 사회에 나가서 생활을 하려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잖아요. 돈을 주면 잔돈을 안 갖다 준다든지, 약속 시간을 안 지킨다든지,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에도 제시간에 출석하는 아이들이 20퍼센트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지금 수자타아카데미를 다니는 아이들은 출석을 또박또박하는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변화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필요하면 꼭 허락을 받아서 사용해야 한다’ 이런 교육은 필요합니다. 교육은 시키지만, 그들이 안 지켰다고 내가 화를 낼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이 살아온 습관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됩니다.

 

제가 부탄에 갈 때도 봉사자를 아무나 데려가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마을 주민들을 물들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문제를 조금씩 같이 개선을 해줘야 고맙게 느낍니다. 그런데 물건을 대량으로 나눠 준다든지, 시골 아이들에게 K팝, K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자랑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논의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를 유의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말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에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도와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공동체를 깨지도록 하게 됩니다. 또 뭘 자꾸 갖다 주며 선교하는 것처럼,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구호 활동을 다시 평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4. 03. 27 법륜스님의 하루 中에서>